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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맞으면 만들 게임

카카오프렌즈의 IP에 대한 잡상

by staff6 2016. 8. 5.

게임개발자를 남편으로 두고 있지만, 아내는 게임에 그닥 관심이 없다. 예전에 애니팡을 잠시 하고, 최근에 남편의 음모/성화에 프렌즈팝을 깔아 아주 잠깐 한 정도다. 그런 그녀가 포켓몬 GO의 시스템에 대해 질문해왔다. 대강의 설명이 끝나자 '친구들, 특히 지아와 함께 돌아다니며 플레이하면 재미있겠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 포켓몬 GO의 파도가 우리 집까지 밀려왔다.


감히 추측컨데 2018년 여름에는 몇몇 국산 VR/AR 게임의 알파 버전이 등장할 것이다. 특히 AR 게임들은 어떠한 이유에서건 기존의 IP와 협업(이미 뽀통령이 첫 테이프를 끊었고)하려고 할 거고, 관련해서 국산 IP가 극소수라는 거 그리고 인문학(대폭소...)에 대해 온갖 기사가 나올 것이다. 물론 대책은 없거나 아니면 또 정부에서 단기간의 프로젝트를 발주할 거다.


(김상중씨의 말투로) 그런데 말입니다. IP를 지금부터 키우면 되지 않을까요? 


친구나 지인들은 알겠지만, 나는 카카오프렌즈를 조금 소소하게 좋아하는 팬인데;) 그래서가 아니라, 진지하게 검토해봐도 뽀로로나 라바보다 카카오프렌즈가 15년 뒤를 좌우할 거라 믿는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포켓몬스터의 케이스를 생각해보자. 지금부터 20년 전에 첫 발매되었고 지금까지 릴리즈된 포켓몬의 숫자가 700종 이상이다. 수집, 강화, 진화가 주요한 소재인 게임들을 만들 때 소체의 최저 수치가 보통 400인 것을 생각하면 이 수량을 채울 수 없는 IP는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카카오프렌즈를 지금부터 392종 더 만든다?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기존의 카카오프렌즈를 가지고 색 배리에이션을 전개한다? 까만 털의 프로도(잡종견)까지는 납득할 수 있는데 파랗게 물든 무지(단무지)나 덜익은 녹색 어피치(복숭아)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색 배리에이션이 있는 튜브는 어쩌란 말인가!


사실 가타부타할 필요가 없는 게 카카오프렌즈는 이미 잘 하고 있다. RX-78 대지에 선 네오(고양이), RX-178 선글라스를 쓰고 커피를 든 네오, RX-93 공항 패션의 네오와 같이 하나의 프렌즈에 상황에 따른 다양한 코스튬을 입히고 있다. 그러니 이 데이터들을 모아서 쓰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모으기다. IP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모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잘 모아야 한다. 내부 상황을 전혀 모르는 외부인 입장에서 함부로 얘기하기 어렵지만, 2012년 말에 론칭된 카카오프렌즈들의 데이터가 지금까지 제대로 수집되고 관리되는 지가 궁금하다.


예를 들어 

1) 카카오프렌즈 론칭 초기에 iOS로는 배포되지 않고, AOS 빌드와 카카오스토리에 흩어져 사용되는 이모티콘(생일 축하 카카오프렌즈) 이미지 

2) 인도네시아 로컬 이모티콘(스쿠터를 타는 제이지, 할로윈 꿀벌 바이크와 다름) 이미지 
3) 멜론 장기 이용 고객에게만 제공된 이모티콘(미생 카카오프렌즈) 이미지 
4) 카카오프렌즈 오프라인 스토어에서 상품의 입고, 소진 여부를 알리는 팝업용 이미지 
5) 게임/서비스 론칭할 때 리워드 형태로 제공하고 30일 한정 사용 후 재판매를 하지 않는 이모티콘 이미지
6) 프렌즈팝 안에 있는 (배경 데이터로 치부되기 쉬운) 수많은 코스튬을 입은 콘 이미지 
7) 다음과 카카오 합병 이후 내부에서만 배포한 카카오프렌즈 REBOOT 스티커 이미지 
8) 카카오게임즈 내부에서 입으려고 만든 티셔츠의 우주인 버전 라이언 이미지
9) 프렌즈팝과 달리 프렌즈런에만 존재하는 직업 카카오프렌즈 이미지 

등등등.


일본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들의 화집을 볼 때마다 부러웠던 건 화집의 발매 여부보다 일러스트 하단에 작업 일시, 용도, 작업 당시 혹은 그 후의 코멘트 등이 빼곡하게 정리된 것이었다. 


카카오프렌즈들의 이미지들도 그런 식으로 작업되고 또 관리되고 있을까?

이번에 무슨 서비스 론칭하니까 언제까지 한 세트 주세요라는 식으로 정확한 오더가 없는 탓에 기존의 작업물과 배리에이션 그 와중에도 짬짬히 작업한 오리지널 데이터가 섞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카카오프렌즈가 이만큼 관심을 받기 전 그러니까 카카오가 설립된 직후 정신없이 성장하던 시기의 작업물과 카카오에서 카카오프렌즈가 독립 법인으로 분사되는 과정에서 개인 작업자가 관리 중이던 이미지와 데이터가 제대로 인수인계되었을까? 퇴사하거나 전배하더라도 담당자의 이름, HR팀 내부 관리 시리얼 등이 다 기록되어 있을까?


앞서도 얘기했지만 2012년 말에 등장한 카카오프렌즈는 햇수로만 따지면 2032년이 되어야 포켓몬같이 20년차 콘텐츠가 되는 거다. 여기서 조금 시니컬하게 얘기하자면 카카오가 2032년까지 영업을 하고 있을까? 물론 장수하며 한국 IT 업계를 선도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변화가 격심한 IT 업계의 특성상 어찌될 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거다. 

하지만 지금같은 때일 수록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소중한 IP를 잘 관리했으면 한다.


시간이 흘러, 콧잔등에서 자꾸 흘러내리는 안경을 고쳐쓰자 가로수 위에 마법사 어피치가 빼곰히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고 있다. 눈이 마주치자 옆에 있던 딸도 스마트안경을 고쳐쓰며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하나 둘 셋. 안경다리를 매만지자 마법사 어피치가 거꾸로 떨어지나 싶더니 거리 위에서 실룩실룩 엉덩이 춤을 춘다. 그리고 한 줄 메시지.


APEACH COLLECTION COMPLETE.


그렇게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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