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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앤 소울(Blade & Soul) 1차 CBT 감상

by staff6 2011. 5. 1.
1. 그렇다. (우리는) 무협이었다.

MMORPG를 개발하기 전에, CRPG를 플레이하다가 TRPG라는 것을 알고 플레이할 때의 얘기다.
왕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남유럽으로 추정되는 어느 지역의 여름 밤하늘 아래에서 노숙을 하면서 호밀빵을 씹고 있었는데... 검은 머리 노란 얼굴의 동양인은 이 게임 시스템을 디자인한 서양(!)인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처음 무협지를 읽은 것은 국민학교(!) 때였고, 열심히 읽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 그리고 무협지가 무엇인지 다시 깨닫고 읽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면서였다. 사실 '무협'만큼 RPG라는 장르에 잘 어울리는 것도 드물지 않을까? 자신의 육체를 단련하기 위해 하루 종일 목인당을 치고, 내공을 쌓기 위해서는 마음을 가다듬고 운기조식을 해야하고, 정파든 사파든 스스로가 생각하는 바를 지키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필요할 때는 목숨을 건 싸움도 피하지 않아야 한다.

NC 소프트의 신작 MMORPG '블레이드 앤 소울'(이하 블앤소로 약칭)은 오래간만에 무협지를 읽으며 느낀 고양감을 모니터를 통해 느끼도록 해주었다. 

김형태 AD의 원화를 그야말로 그.대.로. 살린 그래픽을 보고 있노라면, 소프트맥스에서 만들었던 마그나카르타 PC판이 생각나는 것은 내 입장에서 좀 짖궂은 것일까;) 하지만 이렇게 미려한 그래픽보다 더 눈에 들어온 것은 캐릭터들의 움직임이었다. W키를 연속으로 눌렀을 때 가능한 빠른 이동은 무협 특유의 움직임을 보여주었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을 때의 활강은 동 개발사의 '아이온'과 유사하면서도 그와는 조금 다른 무협의 맛이 느껴졌다.

그런데 블앤소를 플레이하고 있다보면, 내가 지금까지 게임을 개발하면서 스스로 세웠던 몇 가지 기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2. 튜토리얼의 딜레마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생각하지만, 게임에 튜토리얼이 필요할까?
튜토리얼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어디까지 만드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튜토리얼이 필요할 정도로 게임을 만들었다면 조금은 곤란하지 않을까? 게임에 튜토리얼이 필요하다면, 그건 두 가지 의미라고 생각한다. 새롭게 길을 내고 있거나 아니면 작은 실수를 시작하고 있거나;)

이런 내 기준을 벗어나 블앤소의 캐릭터 생성에서 대나무 마을까지의 여정은 정말 대단해서, 온라인 게임의 플레이가 아닌 패키지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평소에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게임 연출에 의미를 두지 말자고 얘기하곤 했었는데, 그건 결국 규모와 집중의 문제일 뿐 개발을 잘~ 하면 모두 해결되는 문제였다;)
그래도 검사에 이어 권사 캐릭터를 하나 더 만들 생각을 하니 조금은 부담스러워지는 것이 솔직한 내 마음이다.

그런데 말이다. 돌이켜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튜토리얼이 아니라 오프닝인건가;)

3. 온라인 게임에서 연출이란

앞서도 얘기했지만 난 온라인 게임에서의 연출에 대해 그닥 좋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이유는 크게 2가지이다. 첫 번째는 패키지 게임과 달리 여러 사람이 접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플레이어 한 사람에게 각종 정보와 상황들이 복합되어 감동까지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멀티 플레이 상황인 만큼 여러 의미에서 방해를 받게 된다. 두 번째는 연출 제작에 들이는 비용, 시간, 노력 등에 비해 플레이어는 너무나도 빨리 소모해버린다는 것이다.
 
블앤소에도 이런 저런 연출이 많이 들어가있다. 그렇다보니 게임 초반에는 내가 온라인 게임을 하는 건지 아니면 패키지 게임을 하는 건지 계속 착각하며 플레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크게 거슬리지 않게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었다. 이유가 뭔지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이하는 내 생각이고 또한 추측이다;) 개발자들이 많이 투입되었지만 그저 양으로 승부한 게 아니라, 게임의 흐름을 면밀히 계산하면서 스스로의 육체를 자신이 생각한 대로 정확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몸을 만든 이소룡처럼 질을 추구한 것같다^^

4. 새로운 조작계

CBT 테스터에 당첨되었지만, 바쁜 일정으로 인해 테스트 기간 초반에는 사무실 동료 분에게 계정을 빌려줬었다. 동료 분께서 플레이해보고 오셔서 그 감상을 얘기해주셨는데 조작계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하셨다. 나 역시 게임을 하면서 가장 당황했고 그리고 조금은 늦게나마 큰 재미를 느낀 게 바로 전투 조작이었다. 블앤소 전투 및 조작 디자인의 컨셉이 가급적이면 적은 키 조작으로도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전해 들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지금까지 블앤소의 동영상들이 공개될 때마다 '이거 사실은 MORPG 아냐?'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그 이유는 초기에 공개된 전투 컨셉 때문이었다. 이제 직접 플레이를 해보니 보통의 MMORPG와는 다르고 또한 논타게팅을 지향하는 여타 RPG들과 달리 격투 게임과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MMO에 어울리게 디자인되어 있다. 
특히 보통의 MMORPG처럼 조작을 해도 무방하지만, 제공되는 규칙에 따르면 따를 수록 좀 더 분명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고 이로 인해 게임 디자이너가 새롭게 제공하는 규칙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조작에 대해서는, (여러 부분과 의미에서) 한동안은 얘기가 나오지 않을지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5. 방향성의 차이

블앤소는 내가 최근에 플레이한 온라인 게임 중 가장 즐겁게 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가장 재미있게 한 게임은 아니었다. 왜일까?

그건 지금까지 내가 해온 개발과 서비스 방향의 차이 때문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난 모두에게 공개하고, 돈을 내는 손님에게 한해 덤을 주는 부분 유료화 게임을 만들고 또한 서비스를 해왔다. 그에 반해 NC 소프트(블리자드도!)의 MMORPG들은 게임을 정말 잘 만들어서 손님들 모두가 돈을 내도록 했다. 이런 차이는 작다고 생각하지만 조금씩 쌓이면서, 서로의 방향이 다른 쪽을 보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6. 그리고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바쁜 회사 일정 탓에 15레벨까지 키워보라는 친구의 말을 지키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그저 2011년 8월의 2차 CBT만을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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