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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근한 비평

[사설] 3대 세습 왕조의 희극과 북한 동포의 비극 사이에서

by staff6 2010. 9. 29.

출처

입력 : 2010.09.28 23:06
수정 : 2010.09.28 23:14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28일 열린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에 맞춰 자신의 셋째 아들인 정은(27)에게 인민군 대장 칭호를 수여했다. 김정일은 이와 함께 자신의 누이동생인 노동당 경공업부장 김경희에게도 인민군 대장 칭호를 부여했다. 김경희의 남편은 북한 권력의 실질적 축(軸)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노동당 행정부장을 겸임하고 있다. 북한은 이로써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 김정은으로 내려가는 3대(代) 세습 체제를 공식화하고 이를 뒷받침할 '피붙이 국가' 체제를 정비한 셈이다. 김정은은 당 대표자회에서 노동당 핵심 당직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헌법 제1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사회주의 국가'라고 규정하고, 제4조는 '공화국의 주권은 노동자 농민 군인 근로인텔리를 비롯한 근로인민에게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북한 헌법 '서문(序文)'을 읽어보면 이런 헌법조항이 사실은 김씨 왕조의 세습을 보장하고 장식하기 위한 빈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서문은 '영생불멸(永生不滅)의 주체 사상을 창시한' 김일성이 '조선의 창건자이고 조선의 시조(始祖)'라고 명확히 규정했다. 그리고 '조선 인민은 수령(首領) 김일성을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主席)으로 모시고 김일성의 사상과 업적을 옹호 고수해 나가야 된다'는 점을 명시했다. '김일성'이란 이름이 17번이나 되풀이되는 이 기이(奇異)한 헌법 서문의 뜻은 북한 주민이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주권자(主權者)'가 아니라 영원한 주석 김일성을 영원히 모셔야 하는 '종복(從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북한 헌법은 아버지 김일성을 '국가의 시조'이자 '영원한 주석'으로 모시기 위해 주석 자리를 폐지하고 권력을 국방위원회에 집중시켜 자신이 국방위원장으로서 국민을 지배하도록 한 헌법이다. 과거의 최고권력자를 '국가의 시조'로 모시는 나라가 공화국일 수는 없다. 그것은 왕국(王國)이고 나라의 대물림을 당연시하는 왕조(王朝)일 뿐이다. 이런 김정일의 의식구조에선 군(軍)에 발도 들여놓지 않은 누이동생에게 대장 칭호를 하사(下賜)하고 누이동생의 남편을 권력의 2인자에 앉혀 세습의 울타리로 삼는 전제적 봉건왕조의 유습(遺習)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이번 노동당 대표자회는 김씨 세습 왕조의 이런 내막을 전 세계에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우리 사회의 친북·종북 세력들은 자기들의 눈과 귀로 확인한 이 사태 앞에서 무슨 말을 할 것인지가 궁금하다.


우리는 북(北)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권력 희극을 지켜보면서 두 가지 질문을 묻고 그 답(答)을 찾아야 한다. 하나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3대 65년을 내려온 김씨 전제왕조가 언제 어떻게 종말을 맞게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김일성은 소련 점령군이 물려준 권력에 정적(政敵)을 가차없이 숙청하는 총구(銃口)의 힘과 자신의 빨치산 활동을 부풀리고 극화(劇化)해서 만들어낸 권위를 얹어 세습왕조의 기반을 닦았다. 김일성은 이 두 가지를 무기로 소련파, 남로당파, 연안파를 차례로 숙청하고 1970년대에는 심복 집단인 빨치산파의 대부분까지 권력에서 밀어낸 1인 통치의 바탕 위에서 김정일이 후계자에 오르는 길을 닦았다. 그런데도 20년 세월이 걸렸다.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내일을 장담하기 힘든 김정일에겐 김일성이 물려준 권위도 사라졌다.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국민의 굶주림을 외면하고 국가의 모든 자원을 군에 쏟아붓는 선군(先軍) 정치를 통해 얻은 총구뿐이다. 그런 그가 스물일곱 살의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일이 순탄할 리 없다. 그럴수록 세습왕조의 군부 의존은 더 심해질 것이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북한 경제는 출구(出口)를 찾지 못하고 더 비틀거릴 수밖에 없다. 군 경력이 없는 누이동생과 누이동생 남편의 울타리 역할도 믿을 만한 것은 못 된다. 주체(主體)와 자주(自主)의 나라 수령이라는 김정일이 지난번 중국 방문 때 아들을 데리고 가 중국 지도부에게 선을 보인 것은 위태로운 세습 과정에서 중국의 후견(後見)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타국(他國)에서 몸을 팔아야 하는 체제의 존속을 무한히 연장해 줄 수단은 어디에도 없다. 김정일이 나라를 아들에게 상속하는 데 성공한다 해도 그 생명은 한시적(限時的)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런 상황 속에서 북한이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고 시도할지 모르는 호전적 도발을 경계하면서 예고 없이 찾아들 북한 급변(急變) 사태를 맞을 대비책 마련에 국가적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질문은 김씨 일가가 권력을 대물림하는 대가(代價)를 고통의 대물림으로 대신 치러온 북한 동포의 지옥 같은 삶을 어떤 방법으로 완화해 줄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 의회에서 북한을 도망쳐 나왔다 붙잡혀 북한 수용소로 끌려간 임신부의 배 위에 널빤지를 얹어놓고 남자 두 명이 그 위에 올라가 발로 밟아 고문하는 짐승 같은 장면이 그림으로 그려져 공개됐다. 이 생지옥을 끝내는 근본적 해결책은 김씨 세습 전제왕조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체제의 입엔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인 중국이 제공한 생명연장 장치가 물려져 있다. 북한 권력의 생명을 연장하는 장치가 북한 동포에겐 고통의 연장 장치다. 이 상황의 딜레마는 우리가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압력을 가하면 북한 권력은 그 고통을 북한 동포에게 전가(轉嫁)하기 십상이란 점이다. 북한 권력은 우리 대북 정책의 이런 딜레마를 교묘하게 활용해 대화와 도발을 번갈아 시도해왔고, 북한에 호응하는 세력들은 이 허점을 인도적(人道的) 명분으로 포장해 정부를 공격해왔다. 김씨 전제왕조의 3대 세습이 가상(假想)의 시나리오에서 현실로 나타난 오늘, 우리는 훗날 북한 동포에게 우리가 그때 당신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 북한 체제의 변혁을 촉진하거나 유발(誘發)하면서도 그 정책 수단의 효과가 북한 동포의 고통을 가중(加重)시키는 쪽으로 왜곡되지 않을 방법을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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